6월 19일: 오랜만에 나 홀로 집에
오늘 엄마가 야유회를 가셔서 새벽 일찍 일어나 배웅해 드렸다. 5시 30분에 일어나게 되었다. 출근하기 전에는 9시에 일어나는 것도 힘들었는데 출근하면서부터 5시 20분이면 눈이 떠진다. 이러다 곧 미라클 모닝을 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ㅎㅎ 어릴 적 추억 때문인지 바다든 산이든 채집하고 구경하는 것을 너무 좋아하시는 우리 엄마. 그동안 왜 그렇게 필요 이상으로 다니시냐 타박하기도 하고 이해도 안 된다 했지만 이제는 점점 이해가 되고 응원해 드리지 못 한 과거가 죄송스럽기만 하다. 평생 자기의 삶이 없으셨다가 잠시나마 일상을 벗어나 본인의 시간을 갖고 추억에 젖는 것이 얼마나 행복하셨을까? 내가 태어나 엄마와 지내면서 엄마는 봄나물이 나거나, 조개를 캘 시즌이 되면 잠깐의 시간을 갖고 오셨다. 딸 하나라고 있는데 같이 가드리지 않아 무엇을 잡고, 따고, 어떤 종류의 나물을 먹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만큼 내가 이기적이고 무심했다. 매년 엄마가 잡아오는 조개, 뜯어오는 나물이 상에 놓여도 여전히 종류가 뭔 지 모른다. 적어도 내가 관심을 갖고 엄마와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았다면, 30년 넘는 세월 동안 접한 엄마의 손길을 기억할 텐 데 말이다.
6월 20일: 휴식
화요일이 가장 기다려지고 행복한 요일이 되었다. 언어교육원에서도 일찍 퇴근하고, 다음 날 수업도 부담이 없기 때문에 준비하는 데 많은 시간을 사용하지 않을 수 있다. 즉, 내 시간이 많다는 것이다. 오늘은 나만의 시간을 갖기로 했다. 퇴근 후 여유 부리며 오랜만에 영화를 봤다. 매일 퇴근하면 수업 준비로 책상 앞에만 앉아 있는데 오늘 만큼은 하루의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항상 나만을 위한 이기적인 삶을 살다가 이제는 남에게 나의 것을 제공해야 하는 삶을 살게 되었다. 나는 지극히 이기적이고 이타심이 부족한 사람인데, 나의 직업은 나의 타고난 천성을 고치길 바랐는지, 혹은 그동안 배려하지 않았던 삶을 보상하라는 것인지 내 시간을 포기해야 하는 사람이 되었다. 물론 지금은 즐겁고 행복하다. 운 좋게 열심히 하는 학생들을 만나서 수업도 열심히 따라와 줘 고맙기도 하고, 더 좋은 수업을 제공하지 못하는 것이 매일 미안하다. 남아서라도 학생들의 궁금함을 풀어주고 싶은 마음이 이제는 조금씩 생기는 것 같다. 학생들이 나를 통해 모르는 것을 알게 되고, 한국어 실력이 향상하는 것을 통해 나 또한 더 좋은 사람으로 바뀌어가는 것만 같다.
6월 21: 참고 참다 터진 화
처음엔 센터 학생들에게 더 정이 갔는데 학기가 바뀌어가면서 센터 학생들의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 성인들과 고등학생들이 함께 있는 반임에도 성인들이 잘 이끌어주고 도와줘 좋은 분위기가 만들어졌던 반면 요즘은 성인들이 개인 사정으로 그만두게 되면서 영락없이 말 안 듣는 철부지 고등학생 반이 되었다. 에어팟을 끼고 수업을 듣는 친구, 교재를 당연하게 안 가져오거나 숙제가 있음에도 두고 가는 친구, 다른 수업 시험이라고 다른 공부를 한다는 친구, 문제에 장난으로 다른 대답을 하는 친구 등. 첫 달이기에 참고 참았으나 오늘 결국 터지고야 말았다. 10시 수업 시작이 되었는데 당당히 편의점을 다녀오겠다니..! 한 차례 말로 잘 알려줬는데 수업 도중에 화투를 꺼내서 놀고 있는 행동까지 했다. 물론 한국과 문화가 다르고 아직 어린 친구이기 때문에 몰라서 하는 행동일 것이다. 몰라서 한 행동이 또 다른 행동을 계속 낳고 있었다. 내가 만만해서? 내 수업이 별로여서? 정말 많은 생각이 들고 화가 났다. 말 안 듣는 친구를 만나면 다 집어던지고 나가라 한다는 다른 선생님들의 말이 이제야 백 번 이해가 되었다. 물론 나도 화를 더 내고 싶었으나 말도 안 통하는 애가 뭘 알아듣겠나 싶은 생각에 더 진이 빠졌다. 이후에 잘 타이르고 한국 문화에 대해 다시 잘 알려주었지만, 찜찜함과 나의 미숙한 행동과 반응에도 적절치 못 했다는 것에 좌절이 느껴졌다.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잘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좋은 선생님이 아니었다. 수업의 진도와 수업에서 다루는 문화 내용뿐만 아니라 나는 더 넓고 크게 학생들을 바라보고 가르쳐야 했었다. 그 학생도 혼자 고군분투하며 한국에 정착하려 하는데 내가 더 많은 것을 알려주지 못했던 것이다.
매일 좋은 수업이 될 수는 없는 것을 알고 있다. 어떻게 발생할 지 모르는 일들 안에서, 학생들과 학생들 사이에서, 여러모로 더 크고 통찰력 있게 바라보고 가르쳐야 하는 것을 새삼 다시 깨닫는 하루였다.
6월 22일: 목요일 증발!
난 원래 목요일이 제일 좋았다. 금요일을 준비하는 마음에 들뜨기도 하고, 한 주가 완전히 끝난 것도 아닌 끝나가며 조금의 아쉬움이라도 정리될 수 있는 시간이라 목요일을 좋아했다. 그러나 이제는 수요일만 돼도 마음의 짐이 덜컥 쌓인다. 목요일은 챙겨야 할 것이 많아 하루 종일 정신없고, 없는 실수도 계속 만들고, 식사도 제대로 못 하고, 몸도 힘들고, 목도 아프고, 내 시간도 사용할 수 없는 그런, 정신없고 바쁜 하루가 되었다. 더 많은 학생들을 만나는 것이 좋지는 하지만 챙겨야 할 학생들이 많아져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능력 이상의 업무가 쌓인다. 목요일은 늘 내가 강사실 문을 잠그고 나왔다.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익히 들어왔기 때문에 추가 수당을 챙겨주는 것은 바라지도 않았다. 그러나 함께 한탄할 수 있는, 말 한마디 나눌 수 있는 누군가가 없는 것이 꽤나 슬펐다. 대학원 동기 선생님들은 잘 지내고 있는지, 잘 적응하고 있는지 너무 궁금하고 보고 싶었다. 특히 나의 단짝이 되어주었던 HW선생님, 다사다난한 일을 함께 겪었던 MR 선생님, 늘 공감해 주고 웃음을 주었던 SE 선생님이 너무나 보고 싶은 날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못난 제자 보듬고, 이끌고, 도와주셨던 MK 교수님도 너무 보고 싶었다. 함께 있을 때는 늘 이런 감사함, 소중함을 왜 깨닫지 못할까. 너무 외롭고, 미안하고, 그리움이 사무치는 밤이다.
6월 23일: 약간의 휴식
드디어 금요일이다. 요즘 컨디션이 너무 파김치마냥 죽어있다. 그래도 몸이 힘든 날이 주말이어서 너무 다행이다! 일하면서 내가 아픈 것보다 내가 아파서 수업에 차질이 생길까 봐 너무 걱정되었다. 가장 힘든 체력으로 주말에 쉴 수 있어서 감사했다.
센터에 가장 열심히 하고, 노력하는 학생이 있다. 원래 1급 후반 정도 수준의 학생이었는데, 한 달도 안 되어서 2급 초중반의 수준 정도로 느껴진다. 반면 처음에는 2급 중반이었는데 요즘에는 1급 수준의 학생들 수준으로 느껴지는 학생도 있다. 후자의 학생의 경우 어리기도 하고, 장난을 많이 받아주기도 하며, 잘하고 있을 거란 생각에 크게 건드리지 않은 것도 있다. 그러나 전자의 학생은 나이도 조금 있는 편이고, 한국에서 살면서 한국어의 중요성을 알고 있어서인지 먼저 궁금한 것을 물어보고, 적극적으로 하는 모습이 예뻐 추가 숙제나 추가 학습을 도와주기도 했다. 학생에 맞춰 도와주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수준이 하향된 학생은 맞춰주다가 오히려 수준이 낮아지게 되었다. 조금 더 잡아주고, 엄격하게 했다면 그 학생은 지금보다 더 좋은 수준으로 향상했을 것인데 말이다. 내가 생각하는 것이 다 맞을 수 없고,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못할 수 있다. 때로는 새롭고 과감하게 방향을 틀어 새로운 방안을 도전해야 할 필요도 있는 것이다. 지금 함께하고 있는 학생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내가 다가가야 더 도움을 줄 수 있을지 심도 있게 고민해봐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6월 24일: 시골 다녀오기
요즘 시골에서 감자, 양파 캐는 시기이다. 이제는 주말에 시골 가는 일이 당연한 일이 되었다. 예전엔 무조건 안 간다하고 집에서 뒹굴거리기만 했는데 점점 늙어가시는 엄마, 삼촌, 외숙모를 자주 뵙고 더 많은 시간을 갖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부족하고 못난 조카를 친딸처럼 생각해 주는 사랑하는 우리 삼촌과 외숙모. 기회 있을 때마다 꼭 찾아뵈어야겠다.
요즘 한문철 변호사 영상이나 프로그램을 자주 보는데 정말 도움이 많이 되는 것 같다. 특히 나같은 초보 운전자들에게는! 혹시나 하는 사고를 예방하기도 하고, 더욱 조심하게 되는 듯하다. 난 물론 아주 큰 초보 딱지를 붙이고 다닌다. 이제 슬슬 운전에 익숙해져 왕초보에서 초보로 바뀐 것 같다.ㅎㅎ 나도 운전이 많이 미숙하고, 부족한 것은 맞지만, 도로 위의 무법자들을 보면 걱정도 되고, 무섭기도 하다. 화가 나기도 한다. 바퀴만 굴러간다도 운전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을 한다. 암묵적으로 서로를 배려하며, 운전자들에게 신경 써줬으면 하는 약간은 이기적인 마음도 크다. 왜들 그렇게 급하고, 위험하게 운전을 하는 건지! 한문철 변호사 프로그램을 보면서 더 경각심을 갖곤 한다. 나만 잘한다고 안전한 운전이 아니다. 언제, 어디서 사고가 일어날지 모르는 일이다. 나도 정말 주의해서 운전하고, 남들의 비난에 눈치 보지 말고 내 페이스로 운전하는 것을 잊지 말자!
6월 25일: 시골 또 다녀오기
감자, 양파를 배달하기 위해 또 시골을 다녀왔다. 내일 비가 오려는지 날이 정말 더웠다. 더워도 삼촌과 외숙모는 옷이 땀에 다 젖어가며 일을 하셨다. 1년 내내 열심히 농작하셔서 정말 터무니없이 적은 값으로 거래를 하신다. 요즘 시세가 많이 올랐다고 해도, 너무 싸다고 해도 정직하게 욕심내지 않고 늘 같은 모습으로 해오셨다. 내가 삼촌, 외숙모를 정말 사랑하는 이유이다. 정직하고, 욕심 없고, 더 챙겨주고, 더 양보하는 그런 마음. 이해하기 어려울 때도 많았지만, 당신들이 그게 좋으시다면 그게 맞는 거다. 내가 가진 세상의 욕심은 어떤 것일까. 내가 계속 갖고 싶어 하고, 정리하지 못하고 있는 것들을 한번 정리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느낀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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